미래 시나리오 기획은 「무엇을 만들까」보다 「어떤 장면에서 쓰일까」 를 먼저 묻는 데서 시작합니다.
장면을 요소로 나눠 보면 이미 가진 역량과 비어 있는 칸이 함께 드러납니다.
장면은 미래를 맞히는 예측이 아닙니다. 참신성과 상용화까지 기간으로 나란히 놓고, 무엇을 먼저 확인할지 고르는 데 씁니다.
아이디어 회의가 늘 비슷하게 끝나는 이유
미래 시나리오 기획이 필요한 순간은 대개 회의실에서 옵니다. 다음 제품 아이디어를 모아 보면 「지금 제품보다 조금 더 가볍게」, 「조금 더 튼튼하게」, 「조금 더 싸게」가 대부분입니다.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사람은 지금 보고 있는 제품과 지금 듣고 있는 고객 요청에서 생각을 시작합니다. 그래서 아이디어가 지금 제품 근처에 모입니다. 이런 개선은 꼭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3년, 5년 뒤의 제품을 준비하기 어렵습니다.
부품·소재·장비 기업이라면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 제품이 어디에 쓰일지는 고객사의 다음 제품이 정합니다. 고객사가 아직 떠올리지 않은 쓰임새를 먼저 그려 볼 수 있다면 제안의 폭이 넓어집니다.
발상의 출발점을 바꾸는 방법이 있습니다. 제품이 아니라 장면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2040년, 누군가 이런 곳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장면을 먼저 그리고, 그 장면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거꾸로 따라가 보는 방식입니다.
장면에서 출발하는 발상 — 디자인 픽션과 스페큘러티브 디자인
장면에서 출발하는 발상은 새로운 방법이 아닙니다. 디자인 분야에는 오래전부터 일부러 낯선 미래를 그려 보고 그 장면으로 질문을 던지는 흐름이 있습니다. 디자인 픽션, 스페큘러티브 디자인이라고 부르는 흐름입니다.
이 분야를 정리한 책으로 앤서니 던(Anthony Dunne)과 피오나 레비(Fiona Raby)의 『Speculative Everything』(MIT Press, 2013)이 자주 거론됩니다. 이 책은 디자인을 미래를 맞히는 도구가 아니라, 「만약 이렇다면?」이라는 질문으로 여러 가능한 미래를 펼쳐 보고 토론을 이끄는 도구로 다룹니다.
기업의 제품 기획에 이 생각을 가져오면 쓸모가 분명해집니다.
낯선 장면은 익숙한 생각의 틀을 벗어나게 합니다. 지금 제품에서 출발하면 떠오르지 않을 쓰임새가 보입니다.
장면은 구체적입니다. 「친환경 소재 수요가 늘 것」 같은 추상적인 전망보다, 누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가 보이는 장면이 이야기를 나누기 쉽습니다.
장면은 정답이 아니므로 여러 개를 놓고 비교할 수 있습니다. 하나를 맞히려 하지 않고, 여러 가능성 가운데 무엇을 먼저 볼지 고르게 됩니다.
다만 기획 실무에서는 장면을 그리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장면이 우리 역량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그리고 언제쯤 제품이 될 수 있는지까지 봐야 다음 일을 정할 수 있습니다.
미래 씬 랩이 하는 일
Raven’s Nest의 미래 씬 랩은 B2B 신제품 기획 스튜디오 안의 발상 탭입니다. SF·디자인 픽션 등에서 모은 낯선 장면을 우리 역량과 엮어, 앞으로 만들 제품 아이디어를 넓게 그려 보고 나란히 비교합니다.
다음 세 가지 질문에 답하도록 돕습니다.
앞으로 우리 제품은 어떤 장면에서 쓰일 수 있을까요?
익숙한 아이디어 말고 어떤 가능성이 있을까요?
여러 아이디어 중 무엇을 먼저 살펴볼까요?
작업은 세 단계로 이어집니다. 장면 카드를 그리고, 장면 요소를 태그로 정리하고, 아이디어를 나란히 비교합니다. 아래에서 데모 화면으로 하나씩 보겠습니다.
데모 시나리오 — 가상 소재 공급사의 다음 원단
데모 데이터 안내
이 글의 회사·제품·화면은 모두 설명을 위해 만든 가상 데모입니다. 실존 기업이나 제품과 관계가 없습니다.
기능성 원단과 소재를 만드는 가상의 소재 공급사가 있다고 해 봅시다. 이 회사의 주요 고객사는 등산화부터 여행용 캐리어까지 만드는 가상의 아웃도어·여행 용품 브랜드입니다.
공급사 기획팀은 지금 고객사 요청에 맞춰 원단을 더 가볍고 질기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몇 년 뒤 고객사의 제품이 크게 바뀔 때 대응하기 어렵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우리 원단이 앞으로 어떤 장면에서 쓰일 수 있을까」를 넓게 그려 보기로 했습니다.
1단계 장면을 카드로 그리기
미래 씬 랩은 아이디어마다 장면의 시점과 상황, 쓰는 사람과 사는 사람을 한 카드에 담습니다. 데모에서 나온 카드 두 장을 보겠습니다.
아이디어 카드 두 장. 카드마다 장면의 시점과 묘사, 장면 사용자 → 구매자 → 우리 모듈, 지표가 한 장에 담깁니다. (가상 데모 회사, 데모 데이터)
카드 한 장은 위에서 아래로 이렇게 읽습니다.
맨 위: 발상 방법과 위치. 왼쪽 카드는 「이종교배」, 오른쪽 카드는 「디자인 픽션」에서 나온 아이디어입니다. 그 옆에 이 아이디어가 비교 판에서 어느 영역에 놓였는지(Next Bet, Watch List)와 상용화 시점이 붙습니다.
제목 아래: 엮은 장면 요소. 왼쪽 카드는 「휴대용 기기 표면의 맥락 기반 정보 표시」와 「신체 완전 교체 및 기계적 강화」 두 요소를 엮었습니다. 서로 거리가 먼 요소를 묶어 낯선 조합을 만듭니다.
가운데: 장면 묘사. 2040년, 지도를 보지 않고도 옷감에 나타나는 신호로 지형 정보를 느끼며 걷는 사람의 모습을 짧은 이야기로 적었습니다.
아래: 장면 사용자 → 구매자 → 우리 모듈. 장면 속에서 실제로 쓰는 사람(자율 탐험가 및 디지털 아티스트), 그 제품을 사는 사람(스마트 패브릭 및 IoT 의류 브랜드 제품 기획자), 그리고 우리가 공급할 수 있는 모듈(프로젝션 매핑용 유연 광원 패브릭 모듈)이 이어집니다.
B2B 기업에게는 맨 아래 줄이 특히 중요합니다. 장면 속 사용자는 소비자이지만, 우리 제품을 사는 사람은 그 소비자에게 제품을 파는 고객사입니다. 쓰는 사람과 사는 사람을 나눠 적으면, 장면이 「멋진 이야기」에서 「누구에게 무엇을 제안할지」로 내려옵니다.
카드 맨 아래에는 참신성, 실현 가능성, 역량 연관, 욕구 강도가 나란히 보입니다. 이 값들은 아이디어 하나를 판정하는 점수라기보다, 카드끼리 견줘 볼 때 어디가 강하고 어디가 약한지 보는 단서로 읽는 것이 좋습니다. 오른쪽 카드에 「근거 부족」 표시가 붙은 것처럼, 아직 근거가 약한 아이디어는 그렇다고 드러내 줍니다.
2단계 장면 요소를 태그로 정리하기 — 가진 역량과 빈칸
카드가 여러 장 쌓이면 장면을 이루는 요소를 따로 모아 볼 차례입니다. 미래 씬 랩은 장면 요소를 목적·원리·위치·상호작용·환경 다섯 축으로 나눠 태그로 정리합니다.
다섯 축으로 묶은 장면 요소 태그. 이미 가진 역량에 해당하는 태그는 색으로 구분됩니다. (가상 데모 회사, 데모 데이터)
다섯 축은 이렇게 생각하면 쉽습니다.
축
묻는 것
데모 화면의 태그 예
목적
이 장면에서 제품은 무엇을 해 주나
사람에게 정보 전달, 주변 환경 감지, 신체 보호
원리
어떤 원리로 그 일을 하나
반사형, 투과 변조, 열·적외선
위치
몸이나 공간의 어디에 있나
손에 듦, 착용, 피부 밀착
상호작용
사람은 어떻게 다루나
흘끗 보기, 상시 수동, 필요 시 조작
환경
어떤 조건에서 쓰이나
일상, 고온, 습윤·수중, 보호 장비 착용
이 화면의 쓸모는 구분에 있습니다. 이미 가진 역량은 색으로 구분해 보여 줍니다. 이렇게 나눠 두면, 장면들이 자꾸 요구하는데 우리에게는 없는 칸이 눈에 들어옵니다.
가상 소재 공급사라면 이렇게 읽을 수 있습니다. 「착용」, 「습윤·수중」처럼 지금 원단으로 이미 다루는 칸은 바로 제안에 쓸 수 있는 강점입니다. 반대로 「피부 밀착」이나 「고온」처럼 여러 장면에 반복해서 나오지만 아직 비어 있는 칸은, 협력사를 찾거나 연구 과제로 올릴 후보가 됩니다. 빈칸이 많다고 나쁜 아이디어는 아닙니다. 다만 그만큼 시간이 더 걸린다는 뜻이므로 다음 단계의 비교에 반영해야 합니다.
3단계 참신성 × 상용화까지 기간으로 비교하기
아이디어가 많아지면 고르는 일이 남습니다. 미래 씬 랩은 아이디어를 참신성과 상용화까지 걸리는 기간 두 기준으로 한 판에 놓습니다.
참신성과 상용화까지 기간으로 나눈 아이디어 비교 판. 영역마다 다음에 할 일이 다릅니다. (가상 데모 회사, 데모 데이터)
판은 영역으로 나뉩니다. 데모 화면을 기준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영역
위치
다음에 할 일
Next Bet (다음 베팅)
참신하고, 5년 안에 상용화 가능
우선 검토 대상. 고객사 제안이나 기획서 초안으로 옮겨 봅니다.
Moonshot (문샷)
참신하지만 5~10년 걸림
큰 기회일 수 있으나 시간이 깁니다. 빈칸을 메울 연구·협력 과제로 나눠 봅니다.
Watch List (지켜볼 목록)
익숙한데 5년 이상 걸리거나, 10년 이상 걸림
지금 투자하기보다 신호를 계속 지켜보며 때를 기다립니다.
Incremental (점진 개선)
익숙하고 빨리 가능
이미 하고 있는 개선과 겹칩니다. 화면에서도 흐리게 처리됩니다.
데모의 「아웃도어 패브릭」 카드는 상용화 2031로 Next Bet 쪽에, 「열차폐 의류」 카드는 10년 이상·근거 부족으로 Watch List 쪽에 놓였습니다. 이 결과를 받은 기획팀이라면 아웃도어 패브릭 아이디어를 먼저 고객사 제안 후보로 다듬고, 열차폐 의류는 관련 신호가 늘어나는지 지켜보는 목록에 둘 수 있습니다.
이 판의 장점은 같은 기준으로 나란히 놓는다는 데 있습니다. 회의에서 목소리 큰 아이디어가 먼저 뽑히는 대신, 모든 아이디어가 같은 두 기준 위에서 비교됩니다. 판단은 여전히 사람이 하지만, 무엇을 놓고 판단하는지가 분명해집니다.
결과물과 진행 방식
미래 씬 랩을 쓰면 세 가지 결과물을 받습니다.
아이디어 카드 — 장면·사용자·구매자·우리 모듈을 담은 카드
아이디어 비교 — 참신성과 상용화까지 기간으로 나란히 놓은 비교
다음 확인 후보 — 디지털 트윈 실험으로 가상 소비자에게 먼저 물어볼 아이디어
진행은 네 단계입니다. 넓혀 보고 싶은 제품과 시장을 알려 주시면(요청), 우리 역량과 엮을 장면의 범위를 함께 정하고(설정), 장면 카드를 엮어 아이디어를 만들고 비교한 뒤(실행), 아이디어 카드와 비교 결과를 전달하고 함께 검토합니다(결과 전달).
처음 쓴다면 범위를 좁게 시작하길 권합니다. 「우리 원단 전체」보다 「아웃도어 의류용 기능성 원단」처럼 제품과 시장을 한정하면, 장면이 우리 역량과 더 잘 이어지고 결과를 검토하기도 쉽습니다.
주의할 점·한계
장면은 예측이 아닙니다. 장면 카드는 「2040년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전망이 아니라, 발상의 폭을 넓히기 위한 가정입니다. 카드에 적힌 연도도 그 시점을 상상해 보자는 출발점으로 읽어야 합니다.
비교 판의 위치도 판단의 재료입니다. 참신성과 상용화 기간은 아이디어를 같은 기준으로 견주기 위한 축입니다. 어느 영역에 놓였는지가 투자 결정을 대신하지는 않습니다. 기술 검토, 고객사 의견, 사업성 판단은 사람이 해야 합니다.
근거가 약한 아이디어는 그대로 약하다고 봅니다. 「근거 부족」 표시가 붙은 카드는 흥미롭더라도 신호를 더 모은 뒤 다시 보는 것이 안전합니다. 근거를 모으는 방법은 시장 신호 분석 글에서 다룹니다.
소비자 반응은 따로 확인합니다. 장면 속 사용자가 그 제품을 원할지는 장면만으로 알 수 없습니다. 고른 아이디어는 디지털 트윈 실험실로 가져가 실제 조사 전에 가상 소비자에게 먼저 물어보고, 중요한 결정은 사람 조사로 확인합니다.
정리하면, 미래 씬 랩은 정답을 알려 주는 도구가 아니라 더 넓게 그려 보고, 그중 무엇을 먼저 확인할지 고르게 하는 도구입니다. 고른 아이디어를 고객사 제안으로 옮기는 방법은 B2B 전략 분석 활용 글에서, 신호에서 장면을 거쳐 가상 소비자 조사까지 이어지는 전체 흐름은 신제품 기획 데모 글에서 볼 수 있습니다.
1분 영상으로 보기
장면 카드, 장면 요소 태그, 아이디어 비교까지 미래 씬 랩의 화면을 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B2B 신제품 기획 스튜디오 소개 영상의 미래 씬 랩 장면부터 재생됩니다.
B2B 신제품 기획 스튜디오 소개 영상(1분 24초, 0:46부터 미래 씬 랩). 화면은 가상 데모 회사 데이터이며, 그래프는 설명용 예시입니다. 나레이션·음악은 AI로 생성했습니다.
다음 단계
지금 제품 근처에서만 아이디어가 나온다면, 장면에서 출발해 다음 제품을 넓게 그려 보세요. 그려 보고 싶은 제품과 시점을 남겨 주시면 진행 방식을 안내해 드립니다.